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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삶

운명 - 임레 케르테스 #2 유대인 죄르지

by 공동이색상자 2018. 3. 14.


이전에 '운명'이란 소설에 이런저런 개요를 설명해봤습니다.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책을 읽어나가며 이런저런 것들을 작성하다 보면 많은 내용들을 공부하고 적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운명'이란 소설은 제게도 큰 의미가 있는 소설입니다. 비참하고 힘들었던 시기를 불행하게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운명'을 읽고 나서 나 역시 그 안에 많은 행복의 순간들이 있었고, 당시 행동했던 것들이 인간 본성에 기인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런 생각은 결국 나만이 유독 별나거나 특별할 것이 없는 인간사 전반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을 경험했을 뿐이라는 위로와 어떻게 내가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것이 좋았을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컸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1장에 일부 내용을 읽으며 알게 된 것들과 그밖에 정리해둘 것들을 기록해봅니다.









운명 - 임레 케르테스 #2 유대인 죄르지


유대인 죄르지


주인공인 죄르지 쾨베시는 유대인이고 15세입니다. 학교에 가서 조퇴를 하고 아버지와 계모가 계신 상점으로 가야 하죠. 아버지는 목재상을 하고 있는데, 유대인으로 곧 수용소로 이송될 예정입니다. 죄르지 쾨베시는 아버지와 이송 전 준비할 것들을 돕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학교에 어째서 조퇴를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하고 오는 장면으로 소설이 시작됩니다. 


몇 장 되지 않는 상황 설명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르지가 어떤 성격을 가진 소년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의 필력에 감탄이 나오는 부분들입니다.


학교에서 우리 가게까지 나는 씩씩하게, 보무도 당당히 걸었다. (중략) '노란 별' 표식이 가려지게 될 텐데, 그러면 규정에 어긋날 지도...(중략) 가게가 가까워지면서 좀 더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죄르지는 씩씩한 아이로 혼자일 때는 노란 별을 다소 당당히 달고 다니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유대인의 상징인 노란 별. 차별을 공공연히 외부로 드러내는 이 표식에 위축되지 않는, (혹은 어떤 의미일지 깊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린) 아이입니다.


여기서 조금 알아두면 좋은 지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쉬퇴'라는 인물과 나누는 대화들입니다. '쉬퇴'라는 인물은 본래 목재상인 아버지의 상점과는 다른 노천 목재소에서 경리이자 관리 책임자로 일할 때 알게 된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가족이나 고용자, 피고용자의 관계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장님'과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거래처의 직원 정도로 생각되는 인물입니다. 목재상인 아버지는 그런 '쉬퇴'라는 인물에게 노천 창고의 명의를 넘겼으며, 보석과 같은 귀중품을 맡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노란 별을 달지 않은 쉬퇴에게 명의를 넘김으로써 이후로도 계속 수익을 얻으려는 요령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나치의 집권, 반유대적 선동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독일에 불어닥치게 됩니다. 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굴욕적인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서방 연합국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던 독일은 대공황으로 인해 더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평가로 여러가지가 있는데, 주된 평가는 독일이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결정적 요인을 제공한 것이라는 것과 배상금이 아닌 보복성으로 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들이 독일을 두번 다시 성장할 수 없는 국가로 만들어버리려 했다는 평가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대공황으로 인해 독일에서 좌파와 우파간의 충돌이 잦았습니다. 이런 혼란을 틈타 나치가 정치적 세력을 구축하였죠. 그리고 나치는 1932년 전 국민의 37%인 1400만 명의 지지를 얻어 230석의 하원 의원을 확보하며 정권을 잡게 됩니다. 


이후 정부를 독일 수상이 된 히틀러는 반대자들을 숙청하고 다른 정당을 해산시킵니다. 히틀러는 이후 '나의 투쟁'과 같은 저서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계획을 드러냅니다. 히틀러는 독일 내의 기생충 같은 유대인을 없애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행하여 유대인 지도자, 법률가 등의 지도층을 체포하고 유대인이 저술한 책을 모조리 불살라 버립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가진 상점과 공공 건물들을 방화합니다. 또 '유대인과 결핵균에 관한 연구'와 같은 결과를 발표하면서 유대인을 숨겨 주는 경우 결핵 감염에 걸릴 수 있다며 경고하고, 유대인은 박멸되어야 할 열등한 종자이며, 해충이나 세균과 같은 족속으로 여론을 몰아갑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그토록 증오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과거 유대인과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다는 루머부터, 사회의 공동체와 함께 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공동체 생활을 중요시하며, 많은 재화를 거둬들이는 그들을 증오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단순히 막대한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습니다만 이후로도 자행된 유대인 학살을 생각해보면 히틀러는 광적으로 아리아인의 제국에 집착했고, 제국 건설에 걸림돌이 되는 유대인을 정말로 증오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독재자의 생각만으로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긴 어려운 법입니다. 이런 생각이 사회에 만연해 있어야 가능하죠. 실제로도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대체로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유대인은 사실 땅을 잃고 흘러들어온 존재들입니다. 외부인이었던 그들은 변변한 직업을 구할수가 없었기에 금융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고리대금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이들 중 유대인이 참 많았다고 하죠. 하지만 기독교 사회 안에서는 고리대금업을 금지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그들을 곱게 보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유대인 특유의 전통과 종교를 지키며 살아가며 이민한 사회에 녹아들지 않는 행동으로 인해 더욱 배척을 당했죠. 

셰익스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사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옛부터 유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합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발생한 배상금을 물기 위해 화폐를 무분별하게 발행하던 독일 정부는 대공황으로 인해 초인플레이션을 맞아 극심한 빈곤에 빠졌던 독일인은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어쩌면 인간이란 원래 그런 본성을 타고 났는지도 모릅니다. 희생양을 발판 삼아 지금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행동들 말이죠.  


유대인은 수천년간 혼혈화되면서 인종이나 혈통은 의미가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현대에는 더욱 풍습과 유대교로 여부를 가리죠. 나치는 단순히 풍습과 유대교를 믿는 것의 여부로 유대인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도 작가 케르테스는 15살 나이에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유대교를 믿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7,000명의 헝가리 유대인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밝히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치가 유대교를 가리기 위해 행했던 방법이 족보를 제출하여 유대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을 통해 유대인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족보를 가지고 얼마만큼 혼혈인지 비율까지 따져가며 유대인을 색출했습니다. 참고로 3대 조 내에 유대인이 있다면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는 사람으로 규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색출된 유대인은 노란 별을 달아야 했죠. (참고로 과거 유대인은 유대인이란 표시를 위해 끝이 뾰족한 꼬깔 형태의 모자를 썼다고 합니다.)


물론 나치 정권의 이런 정책을 독일 국민 모두가 수용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 2년 간은 유대인인들에 대한 박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죠. 하지만 죄르지가 빵을 배급 받기 위해 갔던 장면에서 유대인을 경멸하는 독일인도 많았음을 시사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정치적이건 전통적이건 유대인을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후 제정된 뉘른베르크법으로 인해 모든 유대인들의 정치적 권리가 박탈되어 버립니다. 또 뉘르베르크 인종법을 따라 유대인은 철저히 배제되게 되죠. 또 1938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오스트리아 내에 살고 있던 19만명의 유대인들의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고 대량 멸절을 위한 집단 거주 계획에 들어갑니다. 



유대인의 죄악과 야훼


1장의 막바지에 유대인의 죄악과 야훼라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그 옛날 우리가 저지른 죄악으로 야훼께서 이러한 운명을 우리에게 내리셨기 때문이다. (중략) ...특히 유대인의 죄왁과 야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그랬다.


유럽은 기독교인이 많았습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를 로마인에게 팔아넘긴 유대인 유다를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유다로 인해 유대 민족을 장구한 세월간 박해했죠.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들의 선지자를 팔아넘긴 이들의 후손이니까요. 히틀러와 나치는 이런 정서를 적극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사용해왔습니다. 심지어 히틀러를 독일을 구원할 메시아로 보며 선지자를 팔아치웠던 유대인이 같은 죄악을 저지를 것이라 이용하기까지 합니다.


유대인에 대한 오랜 박해의 역사와 고리대금업, 자신들의 전통만을 지켜나가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쌓이며 나치가 그토록 많은 수의 유대인 학살을 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차 세계대전과 헝가리


아버지가 수용소로 향하기 전날 가족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계모의 사촌 동생의 남편인 '빌리'가 이런 말을 합니다.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자행되고 있는 이 가혹한 조처들도 그런 이유에서 설명이 가능하지요. ... (중략) 12시 5분전의 상황입니다. 5분만 더 기다립시다.


실제로 독일이 유대인을 지목해 가혹한 정책을 시행한 것은 소설의 시점보다 몇년이나 이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의 대사를 통해 2차 세계대전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전쟁의 막바지가 되어서야 죄르지의 가족이 수용소를 가게 된 것일까요.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헝가리의 역사를 대강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죄르지와 작가인 임레 케르테스 역시 헝가리인이죠. 


헝가리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라는 이중제국의 일원으로 참전했습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해체되고 헝가리는 독립 공화국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과 맺은 조약에 따라 독립을 인정받는 대신 국토의 71%와 인구의 60%를 인접국에 양도하며 약소국으로 전락하게 되죠. 이를 계기로 헝가리는 실지 회복을 최대의 외교 목표로 삼게 됩니다.


이후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무렵 영토 회복을 목적으로 참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독일은 헝가리의 반 나치 감정 및 전선 이탈 등을 우려해 헝가리를 완전히 점령해버립니다. 


이런 헝가리의 역사를 알아두면 '운명'의 주인공이 죄르지가 왜 1년 정도를 수용소에서 보내게 되는지, 그리고 소설의 시작 부분에 아버지가 왜 전쟁이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유대인이 아닌 쉬퇴에게 재산을 넘기는 것인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1장을 읽으며 정리한 것들입니다. 생각보다 알아두면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비교적 짧은 몇장 안되는 1장의 내용에서 수많은 역사적 내용들이 깔려있네요. 정리를 하면서 작가의 필력에 더욱 감탄하게 되네요.



2018/03/14 - [읽는 삶] - 운명 - 임레 케르테스 #2 유대인 죄르지

2018/03/13 - [읽는 삶] - 운명 - 임레 케르테스 #1 책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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