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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삶

운명 - 임레 케르테스 #3 유대인 증명과 시오니즘

by 공동이색상자 2018. 3. 17.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는 2장과 3장의 내용까지를 읽어보며 생각난 것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제 나름대로 재미나게 써야지 여러 번 생각하지만 읽는 분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네요.




운명 - 임레 케르테스 #3 유대인 증명


유대인 증명


아버지가 수용소로 떠나고 2달 여가 흐른 뒤 죄르지는 유대인으로서 나치로부터 증명서를 하나 받습니다. 방학이 전쟁에 동원되며 유대인들에게 새 법률이 적용되면서 죄르지에게도 노동의 의무가 생겼고, 근로봉사에 적합하지 않은 나이에 해당했음에도 노동 현장에 투입되게 되죠. 일터는 쉘 정유공장으로 당시 유대인은 관할구역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법이 있었는데, 노동을 위해 시 관할구역을 벗어나도 된다는 증명서죠. 


이 증명서는 군수산업체 사령관의 서명까지 갖추고 있었다. 또한 이 증명서를 소지한 사람은 '체펠로 가는 관세 구역을 넘어가도 된다'는 지시사항도 담겨 있었다. 


하릴없이 살아가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전쟁 수행에 필요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을 이 증명서가 입증해 주는 탓에, 평가가 아주 달라졌다며 긍정적인 뉘앙스로 글이 전개됩니다. 유독 계모의 언니만은 힘든 노동을 해야 한다며 슬퍼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마도 유대인 역시 전쟁에 수행되는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은 그런 일종의 협조 아닌 협조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죠. 


숱한 탄압에도 유대인은 그 탄압에 대체적으로 순응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 하나 반기를 들어 유대 사회 전체가 곤란해지기보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것들이며,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것이라는 수동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죠. 오랜 탄압에 반기를 들어 전체가 위기에 봉착했던 역사적인 문제도 있었고, 또 오랜 기간 누적된 자신들의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선에 만성적인 습관이 생겨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유대 사회는 랍비나 가족내 구성원이 그런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소설에 아직 구체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죄르지와 그의 유대 가족들이 노동을 받아들이고 수용소로 향하는 것들 역시 유대인 공동체에 그런 이유들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네 행동이 유대인 공동체나 유대인 모두와 연관되어 평가되기 때문이야.


2장에 등장하는 아저씨의 대사에 죄르지는 정말로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도 아저씨의 말이 옳을 수 있다고 여기는 모습에서 유대인의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오랜 기간 이어져온 전통처럼 만연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최근 이스라엘은 이제 더 이상 유대인은 당하지 않겠다며, 당한 것 이상으로 갚아주겠다는 식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죠. 오랜 역사가 지금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유대인을 증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유대인으로 노란 별을 다는 것에 대해서는 두 번째 글에 한번 언급했지만, 가족 구성원 중에 3대 조 내에 유대인이 있다면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는 사람으로 규정했다는 기록을 했었죠. 하지만 유대인은 수천 년간 혼혈화되면서 인종이나 혈통은 의미가 많이 희석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죄르지가 첫사랑인 안나마리아와 친분이 있는 소녀와 대화를 나누는데, 이 대목을 통해 죄르지와 임레 케르테스가 유대인이라 분류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죄르지는 '왕자와 거지'라는 소설을 통해 유대인이 유럽인과 외모적으로 다르지 않고, 단지 주어진 환경에 의해 유대인인지 아닌지를 가를 뿐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점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대인과 유럽인은 다른 것이 없으며, 두 사람을 바꿔두어도 유대인과 아닌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생각을 보여주죠. 그렇지만 언니는 우리의 본질과 상관이 없다면 그저 순전히 우연일 뿐이며 아무런 의미도 없다며 견디기 슬프다고 울어버립니다. 


죄르지는 유대인을 증명하는 기준에 대해서 유대인으로서 자기 자신, 내면, 인종적인 다른 점이 없지만 가족 내 유대인이 있고, 그것을 가르는 기준이 외부로부터 발생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안나마리아의 언니와는 차이가 있으며, 유대 공동체로서 행동하라는 아저씨, 자신의 가족들과도 차이를 보입니다. 이런 죄르지의 생각을 통해 임레 케르테스 역시 실제로 수용소에 끌려갈 때 자신은 유대교를 믿지 않는다고 했던 것이 어떤 함이를 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시오니즘


시오니즘은 19세기 후반 동유럽 및 중부유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고대 예루샬렘 중심부의 시온이라는 약속된 땅, 즉 팔레스타인에 대한 유대인과 유대 종교의 민족주의적인 염원이 비롯된 것이죠. 시오니즘은 유대 사회의 특별한 선민사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마도 헝가리의 유대인들에게도 시오니즘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았을까를 언니와의 대화를 통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시오니즘이란 표현이나 사상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것은 아니라서 이런 생각이 무척 확증편향된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안나마리아와 만난 언니와의 대화를 통해 유대인인 언니가 유대 사회에서 자신들이 특별히 선택 받았다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언니는 내면에서부터 유대인인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달라 그들로부터 경멸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죠. 


우리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중략)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은 정말 특이해. 그것 때문에 자부심 같은 것도 일 때가 있어.(중략) 우리는 그 차이를 우리 안에 지니고 있어.(중략)


유대 선민사상은 기독교의 사상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유대 선민사상은 유대인들만이 선택되었고, 그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자신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과는 다르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야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이기에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유대인이라는 생각이 그들에게 주어진 가혹한 현실을 버티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만 본다면 분명 긍정적인 부분도 있죠. 하지만 그런 생각은 민족의 공동체를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실제로 유대 공동체가 유럽 내 다른 이들에게 미움을 샀던 것도 사회에 녹아들지 않는 그들만의 공동체에 원인이 있었죠. 언니가 보여주는 이런 생각은 사실 몇장 안되는 여러 구절에서 다른 유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르지는 다른 유대인들과는 달리 자신들이 그들과 다른 것은 없으며 단지 사회에서 규정하는 방식들로 인해 유대인과 아닌 사람이 나뉘는 것이라고 말하죠. 이 부분에서 임레 케르테스가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또 자신들의 민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와 별개로 노란 별을 달고 있어야 했던 죄르지는 3장에 접어들면서 평소처럼 출근하던 버스에서 강제로 끌려 수용소로 향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의 행동과 모습을 묘사하며, 당시 유대인은 어떤 모습들의 사람들이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죠. 그리고 마구간에 가둬두라는 고압적인 태도에 실소에 가까운 웃음을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자신을 위해 저녁을 차려놓았을 계모를 떠올리죠. 


이제 이야기는 수용소에서의 삶으로 전환되며 진행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더 읽어가며 해볼 수 있겠네요.



2018/03/14 - [읽는 삶] - 운명 - 임레 케르테스 #2 유대인 죄르지

2018/03/13 - [읽는 삶] - 운명 - 임레 케르테스 #1 책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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